처음 마주치면 이 그림은 적장의 목을 벤 사람보다 금빛 장식 속 여인의 초상처럼 보입니다. 유디트는 고개를 조금 젖힌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있다는 사실을 한 번에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핵심 액자 위의 이름, 유디트의 시선과 몸, 오른쪽 아래에 잘린 머리를 순서대로 보면 클림트가 구원의 이야기를 팜파탈의 얼굴로 바꾼 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보면 좋은 점
- 위쪽 액자의 “JUDITH UND HOLOFERNES”가 장면의 두 인물을 알려 주는지 확인합니다.
- 유디트의 고개, 열린 입술, 맨 어깨가 경건한 영웅의 초상과 어떻게 다른지 봅니다.
- 오른쪽 아래의 어두운 머리를 찾고, 왜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났는지 생각해 봅니다.
금빛 여인은 왜 적진으로 들어갔을까
이야기의 유디트는 유대인 과부입니다. 고향 베툴리아가 아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자 그는 혼자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으로 들어갑니다. 연회 뒤 그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 목을 베고, 그 머리를 들고 돌아옵니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는 흩어지고 마을은 살아납니다.
보통 이 장면은 믿음과 용기를 보여 주는 영웅담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클림트는 칼을 휘두르는 순간도, 귀환 장면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끝난 직후처럼 보이는 유디트의 상반신을 화면 가득 세웠습니다. 사건은 뒤로 밀리고, 그 일을 한 사람이 우리 앞에 남습니다.
이름표가 없으면 살로메로도 보인다
그림 위 액자에는 “JUDITH UND HOLOFERNES”라고 적혀 있습니다. 독일어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뜻입니다. 이 글자가 없다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살로메와 혼동하기 쉽습니다. 두 인물 모두 잘린 머리와 연결되지만, 성서 안에서 유디트는 공동체를 구한 인물이고 살로메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인물입니다.
클림트는 그 차이를 일부러 불편하게 만듭니다. 벨베데레는 이 작품에서 성과 죽음이 떼기 어렵게 얽혀 있다고 설명합니다. 유디트는 우리를 똑바로 보며, 영웅의 겸손함보다 일을 끝낸 사람의 도취와 자신감을 보여 줍니다. 1900년 무렵 자주 등장한 ‘팜파탈’, 곧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여기 겹칩니다.
머리는 왜 화면 밖으로 밀려났을까
오른쪽 아래를 보면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일부만 보입니다. 얼굴은 어둡고 잘려 있으며, 유디트의 빛나는 얼굴과 몸에 비하면 거의 배경처럼 취급됩니다. 이 배치는 승리의 증거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관람자의 시선을 유디트에게 붙들어 둡니다.
금빛 배경도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평평하게 펼친 금박과 무늬는 실제 공간을 얕게 만들고, 피부와 표정만 앞으로 밀어냅니다. 그래서 유디트는 성서 속 과거의 인물이라기보다 관람자와 같은 공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사람처럼 다가옵니다. 작은 머리를 놓치면 아름다운 초상으로 끝나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림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가 모델이었을까
유디트의 얼굴은 훗날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가 모델이었다는 설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다만 이를 확정하는 동시대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그림은 특정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유디트와 팜파탈이라는 두 이미지를 한 얼굴에 겹친 작품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빈 벨베데레에서 이 그림을 만난다면 먼저 유디트의 눈을 보고, 다음에는 오른쪽 아래를 보세요. 한쪽에는 나라를 구한 여인의 이야기, 다른 쪽에는 그 대가와 위험을 밀어 넣은 어두운 머리가 있습니다. 클림트는 그 둘을 금빛 한 화면 안에 붙여 놓았습니다.
사실 확인 자료
본문에서 참고한 자료입니다.